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의 기초

기초복음시리즈 1 -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
신앙의 근본적인 기초를 세우는 일
영적인 삶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의 온몸에 여러 질환이 퍼져 있다면 지혜로운 의사는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치명적인 응급 문제부터 즉시 손을 대기 마련입니다. 손가락의 가벼운 찰과상을 치료하느라 정작 심장이나 뇌의 응급 질환을 방치한다면 그 환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여서 사소한 교리적 지식이나 주변적인 관심사에 앞서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시는가에 대한 확신부터 분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기초를 명확히 정립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온전한 옥토에 떨어져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작은 비바람에도 신앙이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설교를 수없이 듣는다고 해서 그 말씀이 저절로 영혼의 온전한 양식이 되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인데요. 단 5퍼센트나 10퍼센트의 피상적인 이해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에 영혼의 생명을 결정짓는 기초 진리는 거듭 반복하여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과 32절의 말씀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연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음을 명확히 증언합니다. 영적 질병의 가장 깊은 뿌리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식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근원적 불신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의 모든 출발선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라는 엄중한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영혼의 환부를 고침받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이해하는 원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숨 쉬는 공기는 눈에 전혀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없으면 인간은 단 몇 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휴대전화를 작동시키는 전파나 보이지 않는 바람의 움직임 그리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 역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엄연한 실재로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의 실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면서도 유독 영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만 시각적 증거를 고집하는 것은 인간 감각의 한계에 갇힌 편협한 생각일 뿐입니다.
물질세계에 속한 육신의 눈으로는 영적 창조주를 직접 관찰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유한한 물질이나 육체의 형상으로 제한되신다면 그분은 결코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무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우리가 감각적 시각이나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다가가야 함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단정적으로 부인하는 태도는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매우 불합리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세상 모두가 하나님을 부인해도 흔들리지 않을 믿음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위 환경이나 분위기 혹은 타인의 말과 시선에 기대어 신앙을 유지하기에 거센 조롱이나 핍박이 닥치면 쉽게 믿음을 저버립니다. 지구상의 70억 인구가 일제히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결코 타협하지 않을 객관적인 진리의 기둥이 영혼 깊은 곳에 세워져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군중심리나 일시적인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확고부동한 사실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진화론의 허구성과 중간단계 화석의 결핍
수많은 현대인들이 진화론을 맹목적인 과학적 사실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생명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저절로 우연히 진화했다고 끊임없이 교육받으면서 창조주의 자리를 의식 속에서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냉철한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인 관찰 데이터에 근거하여 진화론의 핵심 주장을 살펴보면 심각한 모순과 치명적인 맹점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진화론은 입증된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가설과 상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하나의 가설 체계에 불과합니다.
생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단계 화석은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원숭이가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람으로 진화했다면 그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수천수만 종류의 전이 형태 화석이 지층마다 빽빽하게 발견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화석 기록을 아무리 정밀하게 뒤져보아도 완전한 형태의 원숭이 뼈와 완전한 사람의 유골만 발견될 뿐 그 중간을 잇는 생물 화석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중간 형태라고 떠들썩하게 발표되었던 화석들도 정밀 연구 결과 멸종된 대형 유인원이거나 골격이 유난히 큰 인간의 뼈로 명백히 판명되었습니다.
과거에 퇴화의 흔적이라 주장되던 기관들은 인체에 필수적인 고유 조직입니다. 진화론자들은 꼬리뼈나 맹장 그리고 편도선 등을 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며 남겨진 쓸모없는 퇴화 기관이라고 단정하며 교과서에 싣곤 했습니다. 하지만 해부학과 현대 생리학의 정밀한 발달로 꼬리뼈는 보행과 신체 균형을 잡아주는 핵심 근육의 지지대임이 밝혀졌습니다. 맹장과 편도선 역시 외부 유해 세균을 최전선에서 방어하고 면역 체계를 조율하는 대단히 소중한 림프 조직임이 현대 의학에 의해 명백히 규명되었습니다.
우주의 정밀한 설계와 지적 창조주
정교하게 작동하는 시계를 보며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여길 사람은 없습니다. 수많은 정밀 부품과 톱니바퀴가 완벽한 질서 속에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는 필연적으로 뛰어난 시계공의 설계와 지적인 제작 과정을 증언합니다. 하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거대한 천체와 단 하나의 세포조차 수조 개의 분자가 정밀하게 움직이는 인체는 어떻겠습니까. 이 광활한 우주와 생명체의 놀라운 질서는 결코 맹목적인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탁월한 지혜를 지닌 전능한 창조주가 존재함을 쉼 없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무생물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조립되어 태어날 확률은 완전히 제로입니다. 단 하나의 단백질 분자가 저절로 형성될 확률조차 인쇄소에 폭탄이 터져 공중에 날린 활자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권으로 완벽하게 제본될 확률보다 희박합니다. 이러한 불가능의 연속을 두고 수억 년의 시간만 주어지면 마법처럼 생명이 탄생한다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맹신에 불과합니다. 질서와 생명은 오직 더 높은 지성과 생명으로부터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자연 법칙의 가장 엄중한 기본 상식입니다.
성경은 피조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분명히 드러낸다고 증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을 통해 인간이 창조주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진지하게 응시한다면 그분의 손길을 부인할 수 없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대자연의 정교한 물리 법칙과 생명의 아름다움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는 거대한 찬양의 울림입니다.
주관적 감정을 넘어선 객관적 믿음의 반석
신앙을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위안 수준에 머물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의 고난과 외로움 속에서 위로를 얻고자 교회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믿음의 본질이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주변 상황에 따라 하루에도 수없이 요동치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신앙의 열정 또한 급격히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의 변덕스러운 느낌이나 주관적 체험이 아니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주어진 명백한 사실 위에 뿌리를 내려야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절대적 진리일 수밖에 없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막연하게 믿어야 하니까 억지로 믿으려 애쓰는 종교적 세뇌는 지성적인 의문이나 세상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맹목적인 비이성적 도약이나 억지 확신을 요구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를 온 인류 앞에 당당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기초가 확고한 사람은 삶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성경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심령에 소유한 성도는 기도 응답이 더디거나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내 생각과 좁은 안목이 틀렸음을 겸손히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의 일부분만 편식하듯 골라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을 함부로 난도질하는 오류에 결코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영혼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절실합니다.
모든 인류에게 주신 확실한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가 반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믿음의 표를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인류를 향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보증표를 역사 속에 제시하셨음을 뜻합니다. 그 확실하고 유일한 증거가 바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무덤을 깨치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증인들에 의해 검증된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뿔뿔이 도망쳤던 제자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복음을 전하는 담대한 사도로 변화된 유일한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환상이나 거짓을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기꺼이 바칠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예수님이 바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한 치의 거짓 없는 진리임을 온 인류 앞에 최종적으로 확증합니다.
부활의 사실이 영혼 중심에 새겨지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의심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참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친히 선포하신 천국과 지옥 또한 엄연한 실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막연한 추측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합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부활의 반석 위에 믿음의 기초를 굳건히 세울 때 우리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참된 생명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